베스트셀러 작가 코엘료가 한국인에 보내는 '성탄 콩트'
입력 : 2004.12.05 17:09 02' / 수정 : 2004.12.05 17:41 46'


크리스마스 이브, 프랑스 피레네 산맥의 생마르탱에 있는 작은 마을의 교구 사제는 미사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놀라운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던 것이다. 꽃이란 꽃은 이미 모두 져버린 지 오래인 겨울에, 대기 중에 퍼지는 향긋한 향기는 마치 때 이른 봄을 알리는 듯했다.
신부는 호기심이 일어 이 경이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아보려 교회 밖으로 나섰다가 마을 학교 교문 문턱에 쭈그리고 앉은 한 소년과 마주쳤다. 소년의 곁에는 황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비슷한 것이 놓여 있었다.

“이런, 정말 멋진 나무로구나!”

신부가 말했다.

“천상의 축복을 받아 성스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게로구나. 게다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니! 대체 이 나무를 어디서 찾은 게냐?”

신부가 감탄했지만, 소년은 별로 기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여기까지 이 나무를 끌고 오는 동안 나무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잎사귀가 점점 더 단단해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게 금일 리는 없어요. 게다가 전 부모님이 이걸 보고 뭐라 하실지 걱정이 태산인데요.”

소년은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돈을 주시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멋진 나무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전 타르브 읍내로 향했죠. 도중에 마을 하나를 지나다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사람도 없이 홀로 지내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요. 크리스마스를 혼자 맞는다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나무를 살 때 값을 좀 깎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는 따뜻한 식사나 하시라고 제가 가진 돈 중 얼마를 그 할머니께 드렸어요.

그리고 타르브에 도착해서 큰 감옥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죄수들과의 면회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없어서 슬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 중 누군가가 파이 한 조각 살 돈도 없다고 말하는 게 들리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저보다 돈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가진 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 또래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점심 사 먹을 돈만 남겨 두고 다 드리고 말았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나무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나무 파는 분이 저희 집안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 제가 다음 주에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면 나무를 그냥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장에 도착해보니, 그분은 그날은 나무를 팔러 나오지 않았더라고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 나무 살 돈을 빌려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일단 뱃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싶어서 식당엘 갔는데, 처음 보는 아이가 제게 다가오더라고요. 아마 다른 마을에서 온 아이 같았어요. 그 아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면서 돈을 좀 빌려줄 수 있겠냐고 제게 물었어요. 전 예수님도 어렸을 때 이렇게 배를 곯은 적이 한 번쯤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점심 사 먹으려고 남겨둔 돈을 아이에게 털어주고 집으로 향했죠.

오는 길에 저는 전나무 가지를 하나 꺾었어요. 그걸 다듬고 잘라서 근사하게 만들어보려 했는데, 나무가 쇳덩어리처럼 무거워지더니 결국은 이렇게, 우리 어머니가 기대하신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았어요.”

신부가 말했다.

“얘야, 이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는 이 나무가 천상의 축복을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단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내가 알려주마. 네가 그 불쌍한 할머니와 헤어지자마자, 그 할머니는 역시 한 사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자신이 받은 예기치 못한 축복을 너에게도 베풀어 주십사 하고 기도를 올렸지. 감옥에서 면회를 기다리던 사람 역시 천사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파이를 살 수 있게 된 데 대해 천사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단다. 식당에서 네가 만난 그 낯선 소년도 배고픔을 면하게 된 데 대해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지.

성모와 천사들 그리고 예수께서는 도움 받은 자들의 기도를 들으셨어. 그래서 네가 그 전나무 가지를 꺾을 때 성모께서는 그것에 자비의 향기를 불어넣으셨지. 네가 나무를 끌고 걸어가는 동안 천사들은 그 잎사귀를 어루만져 황금으로 바꾸어 놓았구나.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지는 모든 이들이 죄 사함을 받고 소원을 이루도록 하셨단다.”

바로 그러했다. 전설에 따르면, 생마르탱 어딘가에 아직도 그 축복 받은 전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 권능은 너무나 커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웃을 도운 사람은 아무리 외지고 작은 마을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 나무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들 한다.

2004년 12월 5일

파울로 코엘료, 유대교 민담에 기초한 이야기.




◆ 파울로 코엘료

브라질 출신 코엘료(Coelho·57)는 전 세계적으로 60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연금술사’(1988)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최신작 ‘11분’은 올해 국내 최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아래 생마르탱 마을에서 글을 쓰고 있는 그가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짧고 아름다운 성탄 이야기를 보내왔다.

사색적이고 탐미적인 소설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그의 작품들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에 숨은 ‘영성(靈性)’을 찾는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생마르탱과 브라질의 고향을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젊은 시절엔 극단활동을 하다가 록 음악 가사를 썼으며 히피문화의 선도자였다. 대표작 ‘연금술사’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1994),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1998)는 56개 언어로 번역돼 총 1억부 이상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