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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다발

    2005.10.21 06:15

    석찬일 조회 수:1076 추천:15

    2005년 10월 20일

    폰키엘리 작곡의 오페라 라 조콘다 공연이 있었다.
    장인어른의 부고를 듣고도 라 조콘다에서 솔로역을 연주해야 하는 내 마음은 편치 못했다.

    슬픈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무대에서 연주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까지 느껴졌다.
    이런 게 프로정신이라는 건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나는 사무국장을 만나서 오늘 연주가 끝난 후에 무대에서 인사함으로 박수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상 중에 있는 몸으로 비록 몸은 한국에 가 있지 못하지만, 나의 작은 마음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거니와, 대중 앞에 나서서 박수를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들이 내게 와서 위로의 인사를 해 주었다.

    어제 연주를 포함하서 라 조콘다 연주를 네 번했다.
    매번 연주가 끝난 후, 인사를 하고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면 극장에서 준비한 꽃다발을 받게 되어있다.
    솔리스트와 지휘자만 누리는 특권(?)이기에 솔직히 같이 연주한 합창단원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제는 꽃다발을 받지 못했다.
    아니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받지 않았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사무국장은 내게 연주가 끝난 후, 무대에 나가서 인사를 안해도 되며, 그냥 극장에서 준비한 꽃다발을 가지고 집에 가도 좋다고 말했다.
    내가 맡은 분량의 노래를 다 부른 후, 무대 옆에 있는 문을 통하여 나가는데, 꽃다발이 보였다.

    나는 그 꽃다발을 바라보며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솔로로 연주하고 받은 꽃다발을 아내에게 가져다주면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집에 돌아가도 꽃다발을 받아줄 아내가 없기에, 그 꽃다발을 가지고 오기 싫었나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뭇가지에 힘겹게 붙어있던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떨어지는 낙엽들이 마치 꽃다발의 꽃잎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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