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잠을 자다 [네덜란드 4]
2007.05.18 06:08
2007년 4월 25일 20시 10분 경
하루동안의 일정(암스테르담 시내관광, 코이켄호프 튤립축제, 풍차마을 관광)을 모두 마친 우리는 풍차마을이 있는 Kinderdijk(킨더딬)에서 숙소를 찾아 보았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였던 대로) 모든 숙소는 만원이었다.
그 동네에 있는 호텔 몇군데를 알아보았지만, 한결같이 방이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 중 어느 한 호텔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이 일대에 있는 호텔에는 빈방이 전혀 없다면서, 한참 멀리 나가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네덜란드로 출발하기 전, 인터넷으로 유스호스텔과 호텔을 이리저리 찾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유스호스텔 가격이 매우 비싸게 나왔으며, 그나마 빈방도 없었다.
자그마한 동네에 가면 빈방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방을 못 구하게 되자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침착하게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빌레펠트를 떠나 오기 전 아내는 태운씨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혹시 우리가 그 곳에서 방을 못 찾으면 다시 빌레펠트로 올 지도 몰라."
그 말은 현실화 되어 가고 있었으며, 우리는 독일 땅 빌레펠트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비게이션에 빌레펠트의 태운씨 집 주소를 입력한 후, 태운씨 집을 향해서 가는데 샤론이가 느닷없이 호텔에서 자고 싶다고 했다.
아마 태운씨 집의 시온이 방에서 우리 새식구가 같이 자는데 좀 불편했나 보다.
"샤론아, 아빠도 엄마도 호텔에서 자고 싶은데, 우리가 들어가서 잘 수 있는 빈방이 하나도 없어..."
샤론이는 왜 빈 방이 없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지만, 착하게 잘 수긍해 주었다.
그러던 샤론이는 차에 올라탄 지 10분도 안 되어서 잠이 들었다.
빌레펠트를 향하여 출발한 지 약 20분 정도 되었을 때, 시계를 2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때 우리는 고속도로 가에 있는 표지판에서 숙소 비슷한 표시를 발견했다.
나는 막연히 그 숙소 표시가 있는 곳에 가 보고 싶어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갔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 마자 한 호텔이 눈에 보였다.
호텔 주차장에 주차한 후, 나는 카운터에 가려고 출입문을 향해 가는데, 출입문에 "빈방없음"이라고 크게 적힌 종이를 볼 수 있었다.
그냥 차로 돌아갈까 하다가, 혹시 이 근처에 있는 호텔 중 빈방이 있는 호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로 모른다는 생각에 카운터에 가서 한 번 물어 보기로 했다.
"저 실례합니다... 밖에 빈방이 없다는 표지는 잘 보았습니다만, 혹시 이 근방에 빈방이 있는 호텔이 없을까요?"
"선생님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You are a very lucky man!)"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조금 전에 방 하나의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방을 사용하기로 하고 체크인을 하였다.
호텔에서 자고 싶다던 샤론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서 몸을 마구 흔들면서 깨워 보았다.
"샤론아. 우리 오늘 호텔에서 잘 수 있어. 일어나 봐.. 호텔에 들어가서 자야지..."
하지만 샤론이는 문어처럼 내가 흔드는 대로 흐느적거릴 뿐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샤론이를 안고 아내는 옷가방을 들고서 호텔방으로 갔다.
샤론이를 침대에 내려놓으려는 순간, 샤론이가 멍하게 눈을 떴다.
우리는 샤론이에게 오늘 호텔 방에서 자게 되었다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약간씩 잠에서 깨어난 샤론이를 씻긴 후 재웠다.
그 후, 우리는 빌레펠트에 전화를 하여서 호텔을 잡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부인사를 한 후, 다음 날 밤에 빌레펠트에 도착할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우리는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여 몸의 피곤함을 함께 씻어낸 후 비디오 카메라 밧테리를 충전하고, 전기밥솥에 내일 먹을 쌀도 앉히는 등, 짐정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다음날의 여정을 체크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1994년 1월 29일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온 이후,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던, 아니면 가족들과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몇차례 정도는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잔 적이 있지만,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몇 번에 걸쳐서 가족여행을 할 때 차에서 불편하게 잠시 눈을 붙인 후, 여행을 하였던 기억이 났다.
비록 이번에도 숙박문제를 사전에 준비하지 못해서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왠지 우리여행에 있어서 진일보한 여행이 되었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다음날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우리는 따뜻한 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벨기에를 향하여 출발했다.
댓글 3
-
성석제
2007.05.20 01:14
늦음 밤에 호텔에 방을 얻으셔서 다행이네요. 호텔이 깨끗하고 안락해 보입니다. 2000년에 와이프와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했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 서쪽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 비치까지 중간 피닉스에서 일박을 하고 이틀만에 운전해서 도착을 했는데 목적지에 호텔을 포함해 inn까지 빈방이 없었습니다. 날은 어두워 오고 길도 모르는 메가씨티에서 안절부절했는데 빈방이 있는 호텔을 발견하고 어찌나 마음이 놓이고 기쁘던지..... -
성석제
2007.05.20 01:17
전기밥솥을 보니 집사님의 여행의 연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도 비용절감을 위해 장거리 여행시 꼭 전기밥솥을 가져가죠. 2000년 첫여행때 식사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꼭 아침을 제공하는 호텔이나 여관을 가고 저녁은 해먹습니다. -
석찬일
2007.05.20 15:08
네. 이 날 호텔에서 정말 편안하게 푹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덕분에 이어지는 다음 여행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뭐 여행 연륜은 별로 없지만, 전기밥솥은 알뜰살뜰한 아내의 멋진 아이디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덕분에 비교적 저렴하게 여행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서양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는 부모님들이나 어른들과 함께 여행할 때에는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작년 노르웨이 여행은 물론 올해의 네덜란드나 벨기에 여행에 있어서도 항상 밥을 해서 먹은 관계로 매우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석제씨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을 식비로 지불한 적은 다행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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