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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옷입고 노래하기

    2006.05.26 03:09

    석찬일 조회 수:1199 추천:24



    2006년 5월 25일

    지난 주일 합창발표회와 어제 토스카 연주가 마친 후, 많은 동료들은 목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벌써 몇몇 동료는 병가를 내었고, 이날 오전연습에 참가한 동료 슬라바도 목이 아파서 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고 이야기 했다.

    합창실에서의 오전 연습이 끝난 후, 나는 합창 대표단 회의때문에 극장매점에서 잠시 다른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매점직원이 나를 불렀다.
    "석선생님~, 전화 왔는데요."

    '누가 날 찾을까?'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기획실장인 Herzog(헤르촉)씨가 한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동료인 슬라바가 오전 연습이 끝난 후, 아무래도 내일(5월 26일) 있을 마술피리 연주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헤르촉씨에게 말해서, 급하게 나를 찾은 것이었다.
    슬라바는 마술피리에서 마틴(테너)와 함께 갑옷입은 사람 역의 솔로를 맡아서 연주를 했는데, 그가 아파서 노래할 수 없으니 대타를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단 나는 확답을 하기 전에 악보를 먼저 한번 보고 대답하겠다고 하였다.

    약 30분 후, 극장 악보계에서 악보를 받아서 내일 지휘할 지휘자와 함께 초견으로 대강 악보를 읽어 보았다.
    10페이지 분량의 노래로 약 10분 정도(내가 노래해야하는 부분은 대강 5-6분) 길이의 노래였다.
    2중창, 3중창, 4중창 이렇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라 조콘다 연주할 때, 갑자기 내가 앗틸라 코바치 씨를 대신하여 연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때는 악보를 보고 가만히 서서 하는 콘서트 형식의 연주였기에 부담이 적었으나, 이번 마술피리는 가사를 다 외워야 하며, 비록 적은 양의 연기이지만 연기도 해야 하는 역할이어서 부담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일단 나는 독한사전을 보며, 내가 모르는 단어를 찾아 내가 부르는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공부했다.
    그런 후, 집에 있는 마술피리 시디를 찾아서 내가 노래 부를 부분을 컴퓨터에 저장했다.
    일단 전주부터 간주, 후주를 모두 포함해서 음악파일로 저장하고, 다시 한번 전주, 간주, 후주 등을 빼고 내가 노래 부르는 부분만 뽑아서 다시 저장했다.
    그리고는 반복 옵션을 이용하여 계속 들으며 악보보면서 연습했다.

    이렇게 한 4-5시간 정도 연습하니 가사도 입에 익으며, 음정과 리듬도 타며 노래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돈키호테 연주가 있었는데, 연주하기 약 1시간 전에 다시 한번 지휘자와 함께 내일 마술피리에서 부를 부분을 연습했다.

    돈키호테 연주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도 약 2시간 정도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들으며 마술피리 연습을 하였다.

    5월 26일
    이날은 독일 공휴일이어서 오전 근무가 없었다.
    조용히 마술피리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낮 12시가 되자 이제 더이상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 2시간 정도 텔레비젼도 보며, 점심 식사도 하며 휴식을 취하였으나, 머리만 아파오고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나도 이제 슬슬 늙어가나보군...'
    약간 습슬한 생각도 들었다.

    이래도 저래도 더 이상 악보 보기가 힘들어서 나는 낮잠을 청하였으나, 잠도 들 수 없어서 침대위에서 몸만 뒤척이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마술피리의 가사와 멜로디가 어느듯 내 입에서 흘러나왔으나,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럴 때는 오락이나 하자'
    얼마 전 구입한 PDA(포켓피시)로 나는 테트리스 게임을 하며 여유를 찾아보았다.

    결국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것은 실패하였고, 나는 일어나서 샤워를 한 후, 콘텍트 렌즈를 끼었다.
    그리고는 극장으로 갔다.

    연주 시작하기 40분 전에 지휘자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악보를 안 보고 외워서 불러 보았다.
    가사와 음악적인 표현 모두 비교적 잘 소화해 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틴과 함께 갑옷입은 사람 역은 오페라가 끝날 무렵에 나오므로, 그 전에는 합창단원으로 맡은 역할을 노래했다.

    휴식시간에는 조연출과 함께 내가 할 역할의 연기지도를 받았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내가 갑옷을 입고 출연할 시간이 되었다.
    갑옷은 모두 쇠로 되어서 무거웠다.
    게다가 머리에는 투구까지 써서 온 몸에 철갑을 하는 의상이었다.
    걸음걸이가 좀 불편하였지만, 어떻하겠는가.
    '그냥 열심히 해야지'

    이윽고 내가 무대에 올라가야 함을 알리는 음악이 나왔다.
    나와 마틴은 씩씩하게 무대에 올라가서 정해진 경로대로 다니며 연기하였다.
    그리고는 노래하였다.

    열심히 가사를 외우고 반복해서 공부한 덕에 가사는 모두 생각났다.

    이어서 3중창과 마지막 4중창에 이르기까지 모두 큰 실수없이 잘 마쳤다.

    오페라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자, 마틴이 내 손을 꽉 잡으면서 잘했다고 했다.
    나도 마틴의 손을 꽉 잡아주며 고맙다고 했다.

    연주가 끝난 후, 많은 동료들이 잘했다고 축하한다며 인사했다.
    지휘자도 내게 와서 너무 잘 했다며,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비록 짧은 준비기간안에 해내어야 하는 연주였지만, 잘 마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열심히하여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길 기원한다.
    작은 일에 충성된 종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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