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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ace Bumbry 에게 레슨받다

    2005.08.18 04:09

    석찬일 조회 수:1323 추천:27

    2005년 8월 15일 오후 6시 30분
    뤼벡 음악원에 있는 식당(Mensa)에서 이번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선생님과 만나서 코스가 어떤식으로 진행되며, 각자 어떤 곡을 레슨받을 건지 정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자신이 레슨하고 싶은 곡을 지정하다가 참가자들이 자꾸 자기는 다른 곡을 부르기 원한다고 하자, 내게는 처음부터 무슨 곡을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는 곡이 제가 하고 싶은 곡입니다"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좋아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스카를랏티 가곡 'Già il sole dal Gange' 와 모짜르트 아리아 중 'Non più andrai' 나 'Madamina' 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고, 나는 흔쾌히 오케이했다.
    (코스 참가 신청서에 자신이 레슨 받기 원하는 곡을 10곡 적어냈으며, 선생님은 그 중에서 선곡하신다)

    총 8명이 선발된 이번 코스참가자 중에 한국인은 예상밖에 나 혼자였다.
    보통의 경우 왠만한 마스터클래스에 가보면 한국인들이 참 많았는데, 의외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정확히 누가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독일 사람도 한명인듯 하며, 일본인 1명, 중국인 1명, 러시아인 1명, 등등...

    5명의 소프라노, 2명의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1명의 베이스(나)

    이번 코스 참가자중 남자는 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로 활동한 사람이기에 여자들이 많이 왔고, 또한 비슷한 이유로 여자들을 많이 선발하지 않았나 싶다. (선발은 비디오테이프 심사로 사전에 이루어졌다.)

    보통 다른 곳의 마스터클래스와는 달리 이곳 뤼벡에서의 마스터클래스는 학교안에 있는 식당(Mensa)에서의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식권을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주었다. (아마 마스터클래스 참가비에 포함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공짜라니 좋다.)

    8월 16일부터 나흘동안 공개레슨이 있으며, 하루에 4명씩 레슨을 받는다.
    즉 각 참가자는 두번 레슨을 받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토요일 (8월 20일)에는 참가자 전원이 레슨을 받고 오후 5시에 콘서트를 가짐으로 코스가 마치게 된다.

    나는 수요일과 금요일 레슨 시간이 배정되어 있다.
    어제(수요일) 셋째 시간 참가자로 내가 무대에 올라가자 선생님은 Seok... Chan... Il... 이라고 또박또박 내 이름을 불러주신후, 방청객들에게 스카를랏티의 가곡 Già il sole dal Gange' 를 부른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스터클래스 레슨은 공개레슨으로 진행되는데, 이날도 대강 50명 넘는 사람들이 와서 관람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공개레슨을 구경하는데 입장료를 내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노래를 한 번 쭉 부르자 선생님은 "Schöne Stimme(아름다운 목소리)" 라고 하시면서 내가 고쳐야 할 부분들을 지적해 주셨다.

    곡해석에 있어서 좀 더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모음에서 좀 더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부분, 그리고 음악적으로 약간 느리게 가야하는 부분 등등, 아주 섬세하게 음악을 표현하도록 해 주셨다.

    다음 곡으로 모짜르트의 Non più andrai 를 부르려고 하자, 선생님은 내게 왜 코스 참가신청서에 벨리니의 'Vi raviso'나 베르디의 'Il racerato spirito' 같은 노래는 안 적으셨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Basso buffo 로 공부했다고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그러면 혹시 벨리니나 베르디 악보가 지금 있냐고 물으셨다.
    내가 그 악보가 우연히도 지금 있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물론 방청객들도 다 웃었다. (사실 내가 올라오기 전 참가자는 선생님께 엄청 야단맞고 내려와서 분위기가 좀 살벌했었는데, 선생님과의 이런 대화 덕분인지 코스 분위기는 좀 부드러워졌다 ^^)

    나는 반주자에게 악보를 주며, 'Il lacerato spirito' 첫부분을 불렀다. 선생님은 첫부분을 좀 들으시더니 아마도 내가 오랫동안 이곡을 불러보지 않아서 편하게 못 부르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나중에 이런 곡들을 공부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선생님이 스위스에 한명, 오스트리아에 한명 나와 같이 검은(schwarz) 목소리를 가진 베이스를 가르치고 있는데, 선생님 생각에 내 목소리가 Basso buffo 하기에는 너무 귀족적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곡들을 연습해 보라고 하셨다.

    다시 모짜르트로 돌아와서 'Non più andrai' 를 불렀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고음에서의 처리가 내 귀에도 거슬렸으니 선생님의 귀에 안 거슬릴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곡해석은 매우 좋으니 걱정없고, 단지 고음처리를 집중적으로 연습하라고 하셨다.

    솔직히 그 전 날 샤론이가 밤 12시쯤 자다가 깨서 울면서 우리가 자는 방으로 와서 계속 찡찡대며 울면서 한 시간 정도 농성(?)을 하다가 자서, 덩달아 나도 밤 잠을 많이 설쳤기에 목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밤 잠을 잘 못 자면 아무래도 제일 치명적인 부분이 고음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변명삼아 선생님께 말씀 드릴 필요도 없고, 다음 레슨에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묵묵히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은 내게 책 한권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책에는 'Free voice'라고 적혀있다.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Natural voice' 가 아니라 'Free voice' 를 구현해야 한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라 자유로운 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가 내게는 이번 코스의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추상적인 것이기에, 또한 아련하게나마 'natural vocie' 와 'free voice'의 차이가 느껴지기에 이러한 소리에 대한 정의는 실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Non più andrai' 를 부른 후, 시간이 좀 남아서 선생님은 다음 곡으로 'Madamina' 를 불러 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이곡도 전체적으로 좋으며, 후반부의 느린 부분에서는 내가 마치 레포렐로가 아니라 돈 죠반니인 것처럼 아주 우아하게 불러야 맛이 살아난다고 하셨다.

    내게 할당된 시간보다 시간을 초과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은 귀한 레슨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도 내게 아주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격려해 주셨으며, 방청객들도 큰 박수로 내게 더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그날 레슨 받은 것을 녹음한 것을 들어보려고 MD 를 틀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녹음이 되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좀 더 신중히 녹음기를 다루어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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