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2006년 10월 1일) 무대에 올라간 스탠딩 오페라 베르디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는 연주자와 관객이 아름다운 음악과 감동을 함께 한 밤이었다.

테너 주인공 돈 알바로(Don Alvaro) 외에는 모두 킬 극장 솔리스트들이 연주한 이번 작품에서 몇몇 작은 솔로 파트는 합창단원들이 하게 되었다.

3막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전선야영지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합창에서 솔로를 맡은 3명의 단원들은 물론 1막에서 소프라노 주인공 레오노라(Leonora)의 아버지로 나오는 칼라트라바 후작(Marchense di Calatrava)역을 맡은 나, 레오노라의 시녀역을 맡은 카르멘 카르동(Carmen Cardán), 그리고 알카데(Alcade)역과 외과의사 역을 맡은 안제이 베르나게비치(Andrej Bernagiewicz) 모두 맡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킬 지역 소식을 전해주는 인터넷 사이트 http://www.kiel4kiel.de 에 올라온 운명의 힘 연주비평에도 합창단과 솔로를 맡은 합창단원들에 대한 칭찬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합창에 대한 비평은 의례적인 수식어 한두마디로 끝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합창단에 큰 인상을 받은 듯하다.
아래에 해당 부분과 그에 대한 번역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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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berhaupt: Der Chor! Vom entrückten Gesang der Mönche bis zum Kriegsgetümmel und Wirtshausszenen zeigt sich das große Engagement und die Musikalität der Chorsängerinnen und Chorsänger, die in der "Forza del Destino" auch diverse kleine Solopartien übernehmen können. So präsentieren sich Chan Il Seok als kraftvoller Marchese di Calatrava und Carmen Cardán als präsente Zofe Curra. Insbesondere Andrzej Bernagiewicz überzeugt als Alcalde und Chirurg.

특히: 합창! 수도사들의 무아경의 노래에서부터 전쟁소동장면과 여관식당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합창단원들은 대단한 참여와 음악성을 잘 나타내었으며, 그들은 운명의 힘에서 여러 작은 솔로파트를 맡을 수 있었다. 석찬일은 힘찬 칼라트라바 후작역으로, 그리고 카르멘 카르동은 시녀로 자신들을 나타내 보였다. 특히 안제이 베르나게비치는 알카데와 외과의사로 잘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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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두 번에 걸친 리허설을 통하여 최종점검을 하면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 목요일(9월 27일) 연습에서 레오노라(Sop)와 알바로(Ten), 그리고 칼라트라바라 후작(Bass)이 3중창을 하는 1막 마지막 장면이었다.

극중 긴장도가 더해지며 음악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리며, 3명이 서로 긴박하게 노래를 주고 받으며 다른 사람의 노래와 겹치는 부분도 있어 까다로운 부분을 부르는 중이었다.
칼라트라바 후작이 자신의 딸인 레오노라가 집안에서 반대하는 알바로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긴장감이 고조되며, 알바로가 땅에 던진 총에서 우연히 총알이 발사되어 칼라트라바 죽게되는 장면이다.

내가 노래할 부분을 부른 후 알바로가 받아서 노래한다.
그런데 그 다음 레오노라가 자신이 불러야 할 부분을 놓쳤던 것이다.
레오노라의 노래부분을 듣고 노래를 해야하는 알바로도 자신이 불러야 할 부분을 부르지 않았다.
지휘자는 음악을 끊은 후, 매끄럽지않았던 이 부분을 다시 연습했으며 이 부분은 잘 넘어갔다.
금요일(9월 28일) 마지막 연습을 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착착 잘 맞았다.

그리고 본 무대에 올라간 10월 1일 연주.
서곡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이윽고 1막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내가 노래를 부른 다음에 받아 나와야 할 알바로가 음악을 놓쳐버렸다.
이어서 레오노라도 자기가 불러야 할 부분을 놓쳤으며, 그 사이 알바로는 엉뚱한 마디에 자신없이 노래를 불렀다.

지휘자도 이들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당황해 하는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서 보였다.
(스탠딩 오페라의 경우, 지휘자가 솔리스트보다 뒤에서 연주를 하게 되므로, 솔리스트들은 무대 앞에서 관객석 2층 벽부분에 설치된 모니터에 보이는 지휘자를 보며 연주한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에는 지난 목요일 연습 때 모습이 떠 올랐다.
그날은 소프라노가 먼저 실수를 했지만, 이날은 소프라노의 그 부분이 나오기 전에 테너가 실수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에서 이미 한번 유사한 경험을 했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무시하고 반주를 들으며 연주되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찾아내었다.

지휘자도 내가 노래해야 하는 부분에서 정확하게 내게 사인해 주었다.
나는 지휘자의 사인에 맞추어 노래하였으며, 다시 음악은 잘 흘러갔다.
지휘자의 표정에서도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하여 음악은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으며, 1막 연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중에 악보를 보니 노래와 반주가 다르게 연주된 부분은 8마디였다.
음악이 빠른 부분이어서 한마디에 1초정도 소요되므로 약 8초정도 잘못 흘러갔지만, 무대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음악이 잘못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안 걸린다. 그러한 가운데 8초라는 시간, 악보상으로 8마디를 노래와 반주가 다르게 연주된다는 것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연주가 끝난 후, 지휘자에게 내게 정확한 사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지휘자도 나에게 앞 부분에 다른 사람들이 잘못 불렀는데, 내가 다시 (음악적으로) 잘 차고 들어와서 연주를 잘 할 수 있었다며 고마와했다.

음반처럼 녹음를 해서 마음에 안 들거나, 잘못 연주한 부분은 다시 녹음해서 최상의 연주만 편집해서 들려줄 수 있다면 다르지만, 실제 연주는 이러한 자그마한 실수들이 함께 하기에 더 매력적(?)이며 인간적이라 생각한다.

운명의 힘을 지휘한 요한네스 빌리히(Johannes Willig)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공연 중에 실수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라이브(live, 실황)이지요."

공연이 끝난 후에는 연주를 잘했거나 못했거나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된다.
특히 이렇게 실수가 있은 연주의 경우에는 한편의 에피소드로 마음 깊숙이 새겨져서 훗날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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