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에는 뤼벡에 다녀왔습니다.

 

그 전날(10월 20일) 저녁 합창연습시간에 뤼벡에서 장미의 기사(Rosenkavalier) 합창 파트 중에서 Lerchenauer(새몰이꾼) 파트를 부를 사람 한 명을 구한다고 했는데,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10월 21일) 오전에 뤼벡극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Lerchenauer 역할과 함께 Hausknecht(시종) 역할도 부를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극 중반부에는 Lerchenauer 로 나오고 후반부에는 또 다른 역할로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킬 극장에서는 Kutcher(마부) 역할을 불렀기에 다른 사람을 찾아 보라고 했습니다만, 아무도 못 찾았는지 제게 그 파트를 빨리 공부해서 노래할 수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일단 악보를 안 봐서 뭐라고 확답할 수 없다고 했더니, 바로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주었습니다.

악보는 총 4페이지인데 제가 불러야 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 수 있다고 전화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을 몇 명이 부르냐고 물어보았는데, 새몰이꾼 역할은 저를 포함해서 총 3명이 하는데, 시종 역할은 저 혼자 부르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엉겁결에 단역 솔로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리햐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곡은 참으로 난해한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 제가 시종으로 부르는 부분은 음악적으로 정신이 없는 부분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해도 어려운데, 처음 해보는 부분을 바로 무대에서 불러보라니... 참...

 

집에서 제가 혼자 부를 부분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반복에 반복... 반복만이 살 길이다.

정말 열심히 연습한 후에 오후 3시 40분 쯤 뤼벡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5시 10분쯤 뤼벡 극장 바로 가까운 곳에 주차한 후에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뤼벡 극장 의상팀에서 나와서 제가 입을 옷을 체크해주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킬 극장에서  이미 제 옷 사이즈를 보내 주었기에 제게 맞는 옷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KBB(사무실)에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이어서 조연출이 와서 제가 언제 어떠한 역할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 지 알려주었습니다.

 

뤼벡극장 합창단원 모두 친절하게 저를 맞아주었으며, 특히 여러 분의 한국인 단원들이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와 함께 새몰이꾼으로 함께 등장할 분들이 한국분들이셨는데, 제가 언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또한 든든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시종 역할은 제가 합창단과 별도로 혼자서 연기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연출이 가르쳐준 데로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뭔가 이상했습니다.

 

조연출은 무대가 회전무대인데, 제가 3등분으로 나누어진 무대 중에서 욕조가 있는 부분에 서 있으면 무대가 돌아서 제가 노래할 때 쯤에 무대가 관객석 쪽을 향하게 되고 제 노래가 끝나면 다른 부분으로 넘어갈 것이니 그 자리에서 노래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다른 합창 단원들과 함께 합창 단원들이 퇴장하는 곳으로 퇴장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처음 부분은 약속된 대로 제가 노래하기 조금 전에 무대가 관객석으로 향해서 자신있게 불렀습니다. 몇 마디 쉰 후에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무대는 계속 돌아갔으며, 다른 솔리스트들과 합창단원들은 모두 다음 무대로 갔습니다. 저는 조연출과의 약속대로 그냥 그 부분에 서 있었기에 저 혼자 그 부분에 남아있었으며 제가 있는 무대는 돌아서 관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다른 사람들이 있는 무대로 옮겨 갔지만 제가 노래할 부분은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우왕좌왕하면서 혼잡한 상황이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는 부분이었는데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처음 부분은 저 혼자만 노래 부르는 부분이기에 제가 틀리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이 가게 되는 반면, 약간 쉰 후에 나오는 뒷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구 섞여서 나오는 부분이므로 제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큰 영향이 안 갔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제가 부를 부분을 모두 끝낸 후에 대기실로 올라오던 중 만난 몇 명의 솔리스트와 많은 합창단원들이 모두 제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너무나도 혼잡스러운 부분이었기에 제가 처음에 노래한 부분만 기억에 남고 뒷부분은 노래하는 사람들도 잘 못 느꼈나 봅니다.)

 

합창대표의 배려로 저는 제가 노래부르는 부분을 모두 부른 후에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나서 마지막 인사는 안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뤼벡 극장 문을 나섰을 때가 밤 11시 10분 정도였습니다만, 아직 오페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밤 11시 20분 정도에 끝나고 나서 무대인사를 한 후에 분장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면 밤 11시 40분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잘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를 타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을 때 시계는 새벽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척 길게 느껴졌던 10월 21일 하루의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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