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왼쪽에 있는 시몬의 팔뚝 아래에 얼굴 안 보이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 옆에 슬라바가 보이며 오른쪽에는 마틴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테너 주인공 사드닉이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뒷쪽에는 샴페인을 피해서 도망가는 할머니와 합창단원들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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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돈나 디아나(Donna Diana) 연주가 있었다.

이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에 나를 포함한 5명의 수영선수(극중 역할)가 또 한명과 함께 테너주인공에게 샴페인을 터트리는 장면이 있다.

지금까지 무대 연습할 때에도 그렇지만 실제로 공연할 때마다 적어도 한개의 샴페인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에 떨어져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놀라게 했었다. 당연히 매번 샴페인 터트리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특별 주문이 들어왔다.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서, 특히 오케스트라 박스(무대정면)을 향해서 터트리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샴페인을 터트리면서도 병마개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잘 모른다. 아니 어디로 날아가는지 못 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솔직히 이제까지 한번도 어디로 날아가는지 못 봤다. 노래하면서 어느 한 순간에 여섯명이 같이 샴페인도 터트려야 하며, 일단 샴페인이 터지면 바로 치솟는 거품, 아니 샴페인줄기를 테너 주인공을 향해서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느듯 오페라는 종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며, 드디어 샴페인을 터트리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샴페인 병마개를 조이고 있던 철사를 풀었다. 그런데 지난번까지는 이 정도면 벌써 날아갔어야 할 마개가 오늘은 꼼짝 달싹도 안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동료들의 샴페인도 평소보다는 늦게 터지거나 아직 안 터지고 있었다.
나는 병을 더 세게 흔들고는 엄지 손가락으로 병마개를 약간 위로 올려보았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병마개는 하늘을 향해서 올라갔다.
그 때 내가 무대 벽을 향해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 병마개는 벽을 향해 날아갔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테너주인공에게 샴페인을 뿌리려고 달려갔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연주는 끝이 났다.

관중들의 박수에 호응하는 커튼콜(인사)이 끝나고 모두들 무대를 떠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멈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왠일인가 의아해하면서 멈춰서서는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지휘자는 매번 오케스트라 박스로 병마개가 날아와서 여러분들에게 주의를 요했는데, 오늘은 자기 바로 옆으로 병마개가 떨어져서 자기가 맞을 뻔 했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다음 연주할 때에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부분에서 연주를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아마도 지휘자는 우리들이 고의적으로 오케스트라 박스를 향해서 샴페인을 터트린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도대체 누가 또 오케스트라 박스를 향해서 샴페인을 터트렸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 뒤에 서 있는 동료 안제이를 찾았다. 안제이는 지난번 연주에서도 다른 동료의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로 날아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혹시 오늘은 누구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로 날아갔는지 봤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안제이는 바로 내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로 날아갔다는 말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벽을 향해서 날아가는 것을 봤던 그 병마개가 말이다.
'헉, 이럴수가...'
안제이가 말하길, 내 병마개가 벽을 향해서 날아간 것은 사실인데, 벽에 맞고 난 다음에 오케스트라 박스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난 나 때문에 많은 동료들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의든 우연이든 내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대기실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병마개가 벽을 맞고 오케스트라 박스에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를 밝혀야 다른 사람들이 자신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 병마개가 아니야, 내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를 향해서 바로 날아갔어."
키가 훤칠한 마틴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것이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오늘 누구의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에 떨어졌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음 번 공연에는 그 누구의 병마개도 오케스트라 박스에 날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마틴은 다음 연주 시작하기 전에 조연출에게 가서 샴페인을 터트리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상의 문제이므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만약 샴페인을 터트려야만 한다면 무대 뒤쪽을 향해서 터트릴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무대 뒤쪽에 서 있는 다른 합창단원들에게 샴페인 줄기가 날아가는 것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날아가는 샴페인 줄기를 피해서 무대위에서 뛰어다니는 대강 30명 정도의 합창단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한줄의견          
cepcis 어제 돈나 디아나 연주를 했으며, 우리는 샴페인을 터트렸다. 아무도 샴페인을 합창단을 향해서 터트리지 않았다. 03-05-26 18:56
  하지만 마티아스의 병마개가 오케스트라 박스에 떨어졌기에 커튼 콜 다음에 지휘자가 무슨 말을 할까 기다렸으나, 지휘자는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03-05-26 18:57
  어제는 슬라바의 샴페인 병마개가 한 30센치정도 오르고 떨어지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슬라바가 왠일인가하고 눈을 들이대고 보는데 샴페인이 치솟았답니다. ^^ 03-06-02 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