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내와 함께 시내에 쇼핑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Hertie 백화점'(현재의 Karstadt 백화점 - 같은 계열사로 몇 년전 상호가 바꼈다)을 둘러 보던 중, 아내는 유심히 어떤 칼 셋트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주방용품에는 문외한인 나는 칼이면 다 같은 칼이라는 생각을 하던 때였으나, 아내가 그렇게도 탐내던 칼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내가 탐내던 칼은 바로 쌍둥이 칼이었으며, 그 당시 할인가격으로 400 마르크정도로 기억이 된다. (현재의 200 유로상당)

아내는 이 쌍둥이 칼은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서, 대를 물려주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 이태리에서 Bosch 드릴셋트를 구입할 때, 이 제품은 튼튼하기 때문에 대를 물려주면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 아내는 드릴셋트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가지고 싶어하자 사 주었다.)

독일에 와서 생활하면서 아내의 용품 1호로 자리매김을 했던 그 쌍둥이 칼을 애지중지 아껴서 사용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쌍둥이 칼은 식기세척기에 넣고 씻으면 안 된다기에 아내는 조심스럽게 사용하고는 정성껏 손으로 씻어서 보관하였다.

그러한 쌍둥이 칼 중 두자루의 손잡이 부분이 갈라져서 평생 대물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허황된 꿈이었음을 보여주었기에 그 칼을 볼 때마다 아내의 마음이 착잡했으리라는 점은 아무리 무감각한 나라고 하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아내는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그 손잡이 부분이 갈라진 두자루의 칼을 가지고 그 칼을 샀던 매장으로 갔다.

쌍둥이 칼 담당 직원에게 몇년 전에 이 칼을 샀는데, 식기세척기에 넣지도 않고 조심해서 사용했는데, 칼 손잡이 부분이 갈라졌다고 설명했다.
담당 직원은 본사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AS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무료로 고쳐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물론 우리들이 실수없이 잘 사용하였는데 갈라졌다는 자세한 설명도 빼지않고 적어서 보냈다.

그런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Karstadt 백화점에서 카드가 한 장 왔다.
쌍둥이 칼이 본사에서 돌아왔으니 찾으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그 카드를 가지고 매장으로 갔다.
카드를 제시하니 직원이 창고로 가서 칼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설명하기를 우리가 보냈던 칼과 똑같은 모델이 본사에 (더이상) 없어서 다른 모델이 왔다고 하였다.

우리는 혹시 돈을 지불해야 하나 싶어서 잠시 조마조마했으나, 모든 것이 다 무료로 처리되었다고 했다.
아내는 원래 보냈던 칼 보다 더 큰 칼을 받게 되어서 무척 기뻐했다.
그것도 완전히 새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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