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오후였다.
마당에 있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집사님, 어서 들어오세요~."

그날 저녁에 이용운 집사님 가족들이 뮤지컬 Sweet Charity 공연을 구경하고자 하셔서 내가 표를 준비해놨는데, 그 표를 가지러 잠시 우리집에 들리신 것이었다.
집사님은 아이들과 함께 라보에에 있는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오시는 길이라고 하시며,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하나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게 말입니다. 싱싱한 광어입니다. 저도 잘 못 뜨지만, 오늘 석찬일 집사님께 회 뜨는 방법을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비닐봉지 안에는 싱싱하고 커다란 광어 두마리가 들어있었다.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날생선을 만져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이용운 집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며 들어오시는데, 못한다고 뒤로 빠질 수도 없었다.
그냥 운명이려니 하며 "예."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부엌에서 도마와 칼을 준비했다.
예전에 쌍둥이 칼 셋트를 살 때 들어있던 긴 칼은 이제까지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으나, 오늘 비로서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이현주 집사님과 함께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으며, 진서와 의진이는 이층에 있는 서재에 가서 인터넷을 즐겼다.

"와~, 이거 쌍둥이 칼이네요."
언제 왔는지 진서가 부엌에 들어와서 칼을 보며 말했다.

'나는 몇년전에 이 쌍둥이 칼을 살 때까지 쌍둥이 칼이 뭔지도 몰랐는데... 역시 요즘 애들은 달라~.'

나는 이용운 집사님의 멋진 시범을 보며 감탄했다.
이용운 집사님께서는 그날이 네번째로 회를 뜬 날이라고 하셨지만, 네번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광어를 가지고 노셨다고 말하려니 좀 거시기해서 광어를 잘 손질하셨다고 적는다.

일반적으로  칼로 뭔가를 자를 때에는 부드럽게 잘려나가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날 광어포를 뜰 때에는 뼈가 살에서 떨어져나가는 소리라고나할까, 뭔가 매끄럽다고 말하기에는 좀 다른 어떠한 느낌이 들었다.

"석집사님, 오늘은 회 떠보고 싶으시더라도 잘 구경하시고 다음에 잘 뜨세요."
일단 가운데 뼈를 중심으로해서 포를 떠 낸 다음, 껍지를 싹~ 벗겨내는 기술이 신기에 가까왔다.
살과 껍질의 이별 또한 고통스러운 듯, 힘겹게 힘겹게 조금씩 뜯어내어서 껍질이 없는 포가 완성이 되었다.

한마리의 손질이 끝나고 두마리째 시작할 때쯤 내가 이용운 집사님께 말씀드렸다.
"집사님, 이건 제가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전 고기손질은 커녕, 칼질도 잘 안 해본 나였지만, 집사님께서 옆에서 지켜봐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

이용운집사님 부부는 약 한달전부터 성가대원으로도 봉사하신다.
우리나라 잠수함 사업관계로 가을에 이곳에 오셔서 내년 2~3월까지 킬에서 함께 생활하시는데, 그 기간 중에도 열심으로 성가대에서 봉사하시는 것이다.
특히나도 그동안 혼자 지켜왔던 베이스파트에 이용운 집사님께서 함께하시니, 나는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그 천군만마의 기분이 성가대에서뿐만이 아니라 회를 뜨는 곳에서도 느껴지다니...

"아~. 그러시겠어요? (거실을 향해서) 이제 드디어 석집사님이 회를 뜨십니다."
안그래도 처음 해보는 칼질인데... 부담감까지 팍~ 안겨주시는 이용운 집사님.
'시범조교의 멋진 시범을 봤는데, 열심히 잘해보자' 속으로 다짐을 하고는 광어에 칼을 들이대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적극적으로 잘 못하고 있자, 집사님께서는 다시 한쪽 면의 포를 떠 주시며 말씀하셨다.
"광어가 좀 작은 경우에는 가운데를 안 가르고, 바로 포를 뜨셔도 됩니다."

남은 반대쪽에 칼집을 조금 집어 넣어봤으나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집사님께서는 고기를 약간씩 달래가면서 해보라고 하시며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떻게 하다보니 살점과 뼈가 갈라지면서 어디를 어떻게 잘라야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살과 뼈가 헤어지는 소리가 구슬피 들렸지만, 그 이별의 슬픔보다는 잠시 후에 먹게될 맛있는 회를 생각하며 열심히 포를 떴다.

"석집사님, 잘 뜨시는데요. 전에 많이 해보신 것 같습니다."
이용운 집사님의 말씀에 큰 용기를 얻어서 더 열심히 했다.
사실 이용운 집사님의 이런 칭찬의 말씀이 정말 잘해서라기보다는 이렇게 칭찬을 함으로 내게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하며, 또한 동기부여를 하는 효과를 노리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약간 고기가 찢어진 듯한 모양을 내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포를 떴다.

"포 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한 겁니다."
포를 얇게 잘라서 회를 뜨는 것이었다.
집사님께서 고기를 자르시는 것을 보니 아주 작고 얇게 써셨다.
'왜 저렇게 얇게 써시나? 좀 더 두껍게 썰어야 뭐 먹을 것도 있고, 맛있지 않나?'

어느 정도 분량을 이집사님께서 자르신 후, 나에게 칼이 건네졌다.
'뭐 그래도 많이 잡수신 분께서 말씀하시니, 나도 얇게 썰어야지...'

하지만 회를 자르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원하는 두께로 썰 수 없었다.
얇게 썰려고 하였으나, 좀 두껍게 썰렸다.
원하였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내가 생각하기에 맛있는 정도라고 생각한 두께로 썰린 것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겠군... 음하하하'

이현주집사님께서 멋진 초장을 만드셨으며, 아내는 집에 있던 야채와 터어키슈퍼에서 산 안 매운 고추를 준비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는 광어회와 함께하는 초장과 간장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하지만 내가 속으로 웃으면서까지 좋아했던 두꺼운 회는 얇은 회에 비해서 맛이 없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회는 얇게 썰어야한다고 하는가보군...'

차를 한 잔 마신 후, 이용운 집사님 가족들이 집으로 가신다고 일어나셨다.
"이거 제가 괜히 석집사님 앞으로 귀찮게 해드린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허허"

"귀찮긴요. 이렇게 회 뜨는 방법도 알았으니, 다음에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오시면 맛있게 회도 떠서 드실 수 있고 좋지요.
오늘 좋은 방법도 가르쳐 주시고, 회도 먹게 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집사님 덕분에 정말 오랫만에 먹어본 회 맛이 아직도 입가를 돌며 미소를 짓게 한다.
다음에 회를 뜰 때에는 더 얇게 더 멋지게 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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