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8일
오늘 아침에는 왠지 일찍 일어났다.
'가만히 있어봐라... 내가 알레르기 주사를 언제 맞아야 되지?'
문득 알레르기 주사를 맞아야 된다는 사실이 기억나서 내 책상위의 달력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내가 해야할 일은 거기에 다 적어 놓기 때문이다.

'음, 벌써 주사 맞아야 하는 날보다 일주일이나 더 지났네.'
한달에 한번씩 맞는 알레르기 주사는 규칙적으로 맞지 않으면, 그 주사액 양이 줄어들게 된다.

나는 간단하게 외출할 준비를 하고는 그동안 모인 쓰레기를 들고 나갔다. 분리수거를 하기에 모아두었던 종이까지 오늘은 좀 많은 양의 쓰레기를 버렸다.
혼자 살고 있는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쓰레기가 나온 것을 보니, 그래도 내가 뭘 먹고 살기는 했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동차를 타고 옛날 살던 집 근처에 있는 피부과 병원으로 갔다. (그 병원에서 알레르기 주사를 맞는다)
2시간 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시계판을 잘 맞힌 다음, 병원으로 가던 길에 이발소 하나를 보았다.

나는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면서 간호사들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주사 맞아야하는 것을 깜~빡했지 뭡니까."
그러자 간호사가 말하기를
"아니, 우리들(간호사들)을 잊고 지냈단 말이에요?"
"아뇨. 여러분들을 잊은게 아니라, 주사 맞는 걸 깜박했다구요."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다가, 내 순서가 되어서 주사를 맞으러 갔다.

평상시처럼 주사를 맞고 난 후, 30분간 대기실에서 별 이상이 없는가 기다린 후, 주사액이 다 되어간다고 처방전을 써 줘서 그 처방전을 가지고는 약국에 가서 바로 주사액을 주문했다.
그렇게 하면 약국에서 바로 피부과 병원으로 주사액을 보내주므로, 다음번 내가 주사 맞으러 가면 새로운 주사액을 맞을 수 있게 된다.

약국에서 나온 후,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다 다시 아까 지나쳐왔던 이발관을 보았다. 가만 보아하니 (머리 안 감겨주고 머리깎는 것만 할 경우) 가격은 7,9유로.
뭐 나쁘지않은 가격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보다 더 싼 이발소도 있지만, 아예 큰 차이가 아니라면 약간의 돈을 더 주고, 보기 좋게 한달정도를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며, 7.9 유로도 싼 편에 들어가기에 일단 이발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태리에 있을 때부터 아내가 머리를 깎아줘서 5년정도 이발소에 가 본 적이 없다가, 지금 현재 아내는 한국에 잠시 들어가 있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가는 이발소이기에 좀 멋진 곳에 가서 깎을까하다가 터어키 이발사가 하는 곳에서 머리를 깎기로 한 것이다. 이태리 유학 초창기에는 동네 이발소에도 가보고, 좀 좋은 이발소(미용소)에도 가 보았는데, 유로로 환산할 경우 그 때 비교적 머리를 잘 깎은 곳은 가격이 18유로였다. (단순환산한 가격으로 95년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더 비쌀 것이다. - 그 때는 이태리 리라시대였고, 그 후 유로화로 통합되면서 많은 물가상승이 이어졌다)

일단 이발사의 머리를 보니 뭐 평범해 보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는 머리를 깎고 있는 사람이 한명, 그리고 의자에 한명의 사람이 있었다.
한참 기다려야 된다면 그냥 나가려고 이발사에게 물어보았다.
"저~, 많이 기다려야 합니까?"
그러자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기는 안 깎고 친구 기다린다고 했다.
이발사도 금방 끝난다고 하여서 잠시 앉아서 기다리면서 지금 머리 깎는 사람의 머리를 보았다.
뒷머리는 아주 짧게, 앞머리는 조금 길게 한 스타일로 옆머리까지 짧게 깎아서 아주 시원하게 보였으나, 왠지 너무 짧아보였다.

내 차례가 되어서 이발의자에 앉자, 이발사는 일단 휴지 3장정도되는 종이를 뜯어서는 내 목에 둘러주고는 이발용 보자기를 둘러주었다.
그 종이는 일반 사람 목둘래에 딱맞는 종이로 끝부분에 접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특수 종이(?)였다.
'아~, 머리를 안 감고 나올 경우, 잘린 머리카락이 목에 많이 붙어있고, 옷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렇게 하면 안 들어가겠구나.'

머리깎을 준비가 다 되자, 이발사는 어떻게 깎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음, 아까 전의 그 남자분처럼 너무 짧게는 하지 말구요. 앞머리는 조금 길게 남겨두고, 옆머리하고 뒷머리는 조금만 짧게 깎아주세요."

이발사는 그럼 전체적으로 손질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냐고 해서 나는 좋다고 했다.

이발사가 가위를 가지고 뒷머리를 자르기 시작하기에, 나는 바리깡 가지고 머리를 깎아도 된다고 했다.
이발사는 가위로도 깎을 수 있다고 하면서, 열심히 머리를 깎는데, 손놀림이 왠지 신뢰감을 주는 안정된 손놀림이이서 마음이 놓였다.

내 머리를 깎고 있는데, 다른 이발사 한명이 더 들어와서는 내가 온 다음에 머리깎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내 옆의 빈 이발의자에 앉으라고 하니, 그 사람은 당신 동료에게 깎겠다고 하였다.
'음, 지금 내 머리 깎는 사람이 잘하나 보군.'

그런데 머리를 깎고 이리저리 손질하고는 마지막 머리를 다듬을 때에, 내 머리를 올빽시키는 것이 아닌가!
'음, 이사람도 내가 올빽하는 것이 더 멋있다고 느끼는가?'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래 올빽을 좋아해서인지 왠지 멋있게 느껴졌다.

이발사는 머리를 다 깎은 후에 드라이어로 잘린 머리카락을 다 날리고 목을 쌌던 종이까지 다 때어내니, 머리를 감을 필요를 전혀 못 느꼈다.
진짜 마음에 든다고, 아주 수고했다고 말하고는 유유히 이발소를 나왔다.

거리의 사람들이 내 잘 생긴 머리를 안 봐주나 사람들의 시선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 누구도 내게 머리 잘 깎았네라던가, 하다못해 날씨 좋다고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동네에 있는 케밥집에 가서 되너(Doener)를 사러 들어갔다.
'이 사람은 내게 뭐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야.'
내 예상대로 그 케밥집 종업원은 내게 뭘 살 것이냐고 물었다. ^^
나는 "오늘 내 머리 깎았는데 멋있지?"라고 말하려다 간단히 "되너(Doener) 한개"라고 말하고는 주는 되너(Doener)를 받고서는 집에 와서 맛잇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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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적기 조금 전에 내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으나 잘 나온 사진이 없어서 아무 사진도 여기에는 올리지 않는다.








- lmj(211.52.245.59) 머리깍은기사를이제야보게되어미안하게생각이되는구나 2003-07-10 14:50:14
- lmj(211.52.245.59) 왜 많은사람들이 그잘생긴 얼굴을 몰라보았을까 의심이가네그려 지금이라도 내가말을걸어보겠네 참 머리가 근사하군 ㅎㅎㅎㅎㅎ 2003-07-10 14:53:12
- 석찬일(80.134.181.121) ㅎㅎㅎ 역시 어머님의 심미안은 가히 놀랍습니다. ^^ 2003-07-11 07:41:38
- 한상희(211.110.24.133) 어떤 모습일지 궁금.....^^ 2003-07-18 12:36:42
- 안방마님(217.227.198.154) 마누라 허락도 없이 머리를 자르다니.....ㅠㅠ 2003-07-23 05:24:28
- 석찬일(141.201.222.102) 마누라가 한국에 가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음(궁색한 변명), 나중에 다시 머리 잘릴 각오도 하고 있음. ^^;;; 2003-07-27 00:4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