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이사온 지도 벌써 2년반이 지났다.
그동안 가구배치를 한다, 청소를 한다하면서 몇번이나 대청소를 하였지만, 정작 창문은 이사할 때 한번 닦고는 오늘까지 딱 한번 닦은 기억이 있다.

독일의 날씨, 아니 그중에서도 킬(Kiel)의 날씨 탓일까, 아니면 내가 사는 이 동네가 먼지가 별로 없어서일까는 잘 모르겠다만, 유리창을 닦지 않아도 별로 더러워지지 않아서라고 변명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공기가 맑아도, 먼지가 많이 안 일어나도 조금씩 더러워지는 창문은 어느듯 그 정도가 지나쳐서 유리창문을 바라보는 나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래, 마누라도 없고 샤론이도 없는데, 창문이나 한번 닦아보자!'
마침 오늘 오후 연습도 없어서 청소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알레르기로 가려운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실 아내와 샤론이가 한국으로 가고 난 후, 갑자기 다가온 적막감은 약간의 생소한 느낌까지 주었다.

나는 일단 목욕탕에 가서 걸래를 두개 들고 왔다. 하나는 물을 적셔서 창문에 묻어있는 먼지를 한번 닦아내는 용도로, 다른 하나는 마른 걸래로 유리창 닦는 스프레이를 창에 뿌린 후에 닦아내는 용도로 하기위해서이다.

일단 거실에 있는 작은 창문을 닦았으며, 그 후 거실 큰 창문을 닦았다.
생각보다 창 바깥쪽은 더러워서 걸래는 한번씩 빨아가면서 닦았다.

오랫만에 바라보는 깨끗한 유리창은 나로하여금 일종의 성취감을 맛보게 하였으며, 오랫만에 보람된 일을 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기특하게까지 느껴졌다.

이어서 안방의 창문 두짝을 다 닦고는 부엌창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욕탕 창문까지 다 닦았다.

창문을 다 닦는데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린 듯 했다.
'한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이렇게 깨끗한 창문을 바라볼 수 있는데...'
진작에 왜 닦지 않았을까하는 후회아닌 반성을 하며, 다음에는 좀 더 자주 닦아야지라는 다짐의 마음이 들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고 다니는 나의 경우, 안경에는 뭐가 조금만 묻어도 바로 닦는다. 안경 닦는 천이 없을 경우, 옷으로라도 빨리 닦아야 잘 보이고, 속이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창문은 안경만큼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내 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안경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몸에서 떨어져 있는 안경 또한 자주 닦아야 내가 바라보는 사물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어제까지는 약간은 더러워보이던 창밖 나무들도, 오늘은 아주 깨끗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봄에도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창문의 깨끗한 정도가 차이를 가져오는데,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 같다.






- 작은ㅇㅂㅈ(220.75.111.203) 혼자 있으면 개을러지기 마련인데 기특하구나 외롭다 생각 말고 자유로워졌다고 마음 돌려- 혼자서 성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가꾸기바란다. 오늘 은&샤가 우리집을 다녀갔다. 2003-06-20 21:43:32
- 석찬일(80.134.186.7) 네. 작은아버님 말씀 명심하여 보람된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2003-06-20 22:50:16
- 이현숙(213.140.22.154) 찬이씨 혼자 계셨으면서 사진을 어케 찍었어여??^^ 2003-06-21 09:29:16
- lmj(211.245.208.223) 기특한 일을했구먼 ! ! ! 그동안 좀 바빠서 여기에 들어올 시긴을 갖지못해서 다른사람을 통해서 듣기만하고 이제야 들어와보니 정말좋은일 했네그려 ㅎㅎㅎ 2003-06-30 00:48:45
- 석찬일(217.227.199.134) 감사합니다. ^^ 기특한 일을 했지요. ^^ 2003-06-30 08:24:27
- 석찬일(217.227.199.134) 아.. 현숙씨. 사진아래에 설명 나온 바와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 2003-06-30 08:25:04
- 한상희(211.110.24.133) 그 창문 기억나네요...창밖의 풍경도... 그리운 곳... 2003-07-01 14:51:03
- 손님(61.74.236.159) ㅎㅎ...찬일씨 오늘 만난 거미왕자 입니다^^ 반가웠어요^^ 2003-07-05 11:43:21
- 석찬일(217.82.119.193) 아.. 거미왕자님께서 다녀가셨네요. ^^ 정말 반갑습니다.^^ 2003-07-05 18:49:40
- 안방마님(217.227.198.154) 마누라가 유리창 청소를 한번도 하지 않은것을 이런식으로 누설하다니........근데 그러다 창문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구.내가 있었으면 분명히 말렸을텐데. 2003-07-23 05:30:14
- 석찬일(217.82.116.19) 나는 마누라가 유리창 청소 안 했다고는 표현하지 않았는데, 후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군요. 2003-08-16 15:5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