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 연습이 없는 한가한 날이다.
어제 Sweet Charity 리허설을 마친 후, 오늘 오후에 무대에 올라가는 공연을 위한 배려라고 할까.
하여튼 아침까지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며칠전부터 슈퍼마켓에 가서 뭘 좀 사야겠다고 생각했었기에, 오늘 오전은 슈퍼마켓에 가기로 했다.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뭔가 허전하다.
뭘까 생각하다 보니, 내 열쇠 꾸러미가 안 보였다.

어젯밤에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왔는데, 도대체 어디에 놔뒀는지 기억이 안났다.
평소 열쇠와 지갑을 현관에 있는 신발장 위에 놓는 습관이 있는데, 신발장 위에는 어찌된 일인지 지갑만 보였다.

나는 어제 입었던 옷 주머니 속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어제 입었던 옷 주머니를 다 뒤졌다.
하지만 열쇠 꾸러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열쇠 꾸러미에는 우리집 현관 열쇠, 자동차 열쇠, 자전거 열쇠, 극장 옷장 열쇠 등이 있다.
그렇게 귀중한 열쇠 꾸러미인데...
게다가 그 열쇠고리는 은령이 누나가 내게 선물해 준 것이다.
뭐 요란하거나 화려한 열쇠고리는 아니지만, 자동차 열쇠가 걸린 부분은 다른 부분과 분리할 수 있어서 편리한 기능성 열쇠고리인 것이다.

'이거 열쇠 꾸러미 못찾으면 낭팬데...'

몇 번이고 이미 살펴봤던 옷가지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던 열쇠 꾸러미가 나올 리는 없다.

나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또한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랐다.

어젯밤에 아무도 우리집에 들어온 사람도 없고...
그냥 나 혼자 집에 들어와서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열쇠가 없어졌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는 일단 자동차로 가 보기로 했다.
현관 문을 연 다음에 자동차로 가서 열쇠 꾸러미를 놔두고 올 수도 있다는 상식으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냥 자동차로 가 보기로 한 것이다.

내 입가에는 의미없는 웃음이 지나갔다.
'이거 내가 독일의 흐린 날씨와 겨울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살살 미쳐가는 건 아닌가...'

하지만 그 웃음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어이없는 웃음으로 변했다.
'허~, 이런...'

열쇠 꾸러미는 우리집 현관 문 바깥 열쇠 구멍에 꽂혀있었다.
어젯밤에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그냥 열쇠를 열쇠 구멍에 꽂아놓고 그냥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잔 것이다.

내가 슈퍼마켓에 나가려고 집을 나갈 때가 오전 10시쯤이었으니, 지나가는 마음 나쁜 사람들이 열쇠를 보고 가져갔을 수도 있는 일어었다.
하지만 살기좋은 동네에 사는 나에게 그러한 불행은 오지 않았다.

잠깐의 실수로 시작한 오늘 하루이지만, 그 실수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부족함을 한번 더 깨닫고, 그러하기에 하나님께 더욱 더 감사 드린다.
profile